송태규 시인·교육학박사
세상에나. 단 2, 3일 새 이렇게 달라지다니.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여름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찬물을 끼얹어야 그나마 살 수 있었다.
샤워할 때 그새 미지근한 게 좋으니 내 간사함에 내가 놀란다.
가을까지 날 괴롭히던 더위가 얄미워 오래오래 반 팔 셔츠를 입으리라 작정했다.
고집을 꺾고 이제 긴소매 옷을 입어도 덜 민망한 때가 되었다.
바람이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왔는지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잠들기 전 창문을 죄다 닫고 전기장판을 켰다.
이불 속이 엄마 품처럼 아늑하다.
뒤척이다 운동화 끈을 조이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바로 뒤에 등산로가 있고 그 아래를 호수가 받쳐주고 있다.
운동하기 싫은 사람도 핑계를 찾기 어려운 곳이다.
양옆 숲에서는 아침 찬을 마련하는지 새소리가 요란하다.
얘들도 출근길 사람들처럼 부산하기는 마찬가지다.
새벽 호수 위를 덮은 물안개는 서럽도록 아름다웠다.
시월 중순, 전북특별자치도 시니어(60세 이상) 체육대회에 다녀왔다.
육상 선수들은 새만금 하부도로에서 5km를 달렸다.
그날 기상청에서 ‘강풍주의보’를 내릴 만큼 거센 바람도 고장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막지 못했다.
대회 준비를 하는데 몇 km를 달리는지 아내가 물었다.
5km 단축마라톤이라니 피식 웃는다.
곁에서 보기에도 거창하게 요란을 떤다는 표정이다.
하긴 나도 5km 대회에 나간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마라톤 입문할 때 딱 한 번뿐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대꾸했다. 100m를 달리려고 대회장에 가는 선수들도 있다고. 단거리라고 비웃지 마시라.
100m 건 5km 건 전력 질주해 본 사람은 안다.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허벅지 근육은 초비상 상태가 된다.
준비물을 챙기면서 즐겨 쓰는 모자를 챙기지 않았다.
대신 큼지막한 손수건을 가방에 담았다.
정사각형의 수건을 대각으로 접어 이마에 질끈 둘렀다.
땀이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온몸의 에너지는 머리에 모이는가 보다.
속도를 내거나 힘에 부치면 어쩌자고 땀은 그리 흐르는가.
그럴 땐 눈으로 파고드는 땀을 손등이나 소매로 찍어내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길고 혹독했던 지난여름, 손주를 유아차에 태우고 산책하곤 했다.
덜컹대는 속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을 달고 잠이 들었다.
부채로 그늘을 만들어 주고 땀을 닦아주면서 생각했다.
네가 걷고 달릴 수 있을 때면 난 몇 살이나 될까.
나와 아들·손녀 3대가 나란히 달리는 모습을 그리면 저절로 입꽃이 피어났다.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내 건강관리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출발선에서 대기하는 선수들의 무용담이 귓전에 맴돌았다.
왕년에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서로 말을 섞었다.
나도 보잘것없는 기록을 보태고 싶었지만, 주로(走路)에서 보여주자고 내심 각오를 다졌다.
이제 내가 나를 이끌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선수가 항상 경기를 뛸 수는 없다.
쉬는 동안 다가올 경기를 위해 몸 만드는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
생각을 더듬어보면 젖 먹을 때 기억은 아득하지만, 어쨌든 대회장에서 물었던 젖꼭지를 놓치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달렸다.
코로나19로 주춤하던 마라톤 열기가 다시 살아났다. 가히 열풍이다.
대회마다 참가자들이 몰려 이른바 ‘흥행대박’을 찍고 있다.
어떤 대회는 온라인 창이 열리자마자 젊은이들의 컴퓨터 다루는 속도에 밀리는 사람은 참가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축복 가득한 날이다.
너도나도 건강과 체력 관리를 위해 걷거나 달리면서 몸을 가꾸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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