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규 시인·교육학박사
초등학생 때 숙제를 하지 않으면 학교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몸이라도 아프면 좋으련만 그런 핑계를 댈 만한 위인도 되지 못했다.
그런 날은 치과 의자에 앉던 내 얼굴이 꼭 그 모양이었다.
타던 박 속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도깨비를 보는 놀부의 마음이 그랬을까.
언젠가 준비 없이 덤빈 대회에서 나는 반죽 덜 된 국숫발처럼 허물어졌다.
이번에는 숙제 잘해서 선생님께 칭찬 듣는 나를 상상했다.
아름다운 산과 강이 어우러지고 고인돌이라는 세계문화유산을 지닌 고창에서 오늘 내 육신을 갈아 넣으며 온몸으로 울었다.
대회를 시작하면서 국가 위기인 저출생 문제에 관심을 두기 위해 20여 명의 엄마 아빠가 아이를 유아차에 태우고 함께 해 눈길을 잡았다.
최연소로 참가한 그 아기들이 장래 육상 꿈나무로 자라는 것은 맡아놓은 당상이겠다.
경건한, 그러면서도 다소 들뜬 마음으로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늦가을 바람을 몰고 왔다.
우리는 그 바람에 길을 내어 앞으로 나갔다. 맨 앞에선 주자들은 분, 초를 다투는 선수들이다.
이들은 대회마다 누가 자신의 경쟁자인지 다 파악하고 상대를 의식한다.
순위에 들면 상금을 받아 용돈으로 챙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상금이 탐나도 과욕은 금물이다.
평소 길바닥에 뿌린 땀방울의 무게가 상금 봉투의 무게를 결정한다.
그저 참가비를 내고 체력을 시험해 보는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과 쉽게 동지가 된다. 한 공간에서 무사 완주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같은 부족이다.
고만고만한 보통의 이웃들이 서로 힘을 돋우고 전우애를 나누며 상대를 인정한다.
흔히 마라톤을 고독한 레이스라고 한다. 맞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내 몸을 굴려야 한다.
한 모금의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비틀거릴지라도 쓰러지지 않는 두 다리가 얼마나 감사한지 온몸으로 읽어내는 운동이다.
그 과정에서 숨겨진 나를 들여다보는 숭고한 작업이 마라톤이다.
오늘 고창 대회는 코스 중간중간에 사물놀이패들이 마라토너의 흥을 돋우었다.
힘에 부칠 만한 길목을 지키고 신명나는 가락을 들려주면 없던 힘이 절로 난다.
풍광 좋은 산천의 기운을 먹고 자란 탓인지 주민들이 풍기는 인심의 때깔이 풍성했다.
운동장으로 들어서는데 마지막 오르막이 버티고 있다.
저기를 견뎌야 나를 이기는 것이다.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까. 부끄럽지 말자.
철인의 결기를 세웠다. 결승선이 가까워질수록 뜨거운 호흡이 마음을 잡아주었다.
그 순간 몸은 지쳤어도 어디에서 나오는지 기어이 해냈다는 에너지로 충만했다.
요즘 대한민국은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가 사시사철 열린다.
그 지역에서 상품이 될 만한 꽃이나 인물, 역사적 사건을 내세워 마라톤 상품을 만들었다.
그만큼 마라톤을 즐기는 인구가 늘었다는 방증이다.
특히 남녀를 가리지 않고 20, 30대 청년들의 참가가 눈에 도드라진다.
그 나이 또래들은 러닝 크루를 조직하여 힘든 마라톤을 즐기는 스포츠로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이 함부로 허물어지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 아닐까.
지난해 이맘때, 똑같은 코스를 달렸다.
오늘은 차가운 바람에도 흠씬 젖은 운동복을 보며 피곤함을 잊었다.
대회를 앞두고 숙제 잘한 모범생이어서 작년보다 기록이 좋았다.
세상 물정 어두운 책상물림에게 달리는 재주라도 없었다면 여백 없는 삶에 필시 숨돌릴 겨를도 없었을 게다.
기름 잘 친 기계가 매끄럽게 돌아가듯 우리의 뼈나 근육도 적당한 자극을 주고 써야 더 튼튼하고 강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숙제하는 마음으로 새벽바람에 거친 숨을 섞는다. <저작권자 ⓒ 전북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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