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정치

전혜현(편집부) | 기사입력 2018/02/18 [22:23]

유머와 정치

전혜현(편집부) | 입력 : 2018/02/18 [22:23]

유머(humour) 한마디는 팍팍한 삶에 활력을 주기도하고 숨 막히는 인생에 활로를 열어 주기도 한다.

 

늘 날카로운 설전이 오고가는 정치현장에서 촌철살인(寸鐵殺人)하는 유머는 정치적 긴장이나 갈등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여유도 주고 또 사태를 푸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20세기 석학인 중국의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인 린위탕(林語堂:1895~1976)은 ‘유머감각은 문화생활의 내용을 변화시킬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흔히들 서양은 유머의 과밀(過密)지대요 동양은 유머의 과소(過小)지대라고 한다. 사람을 잘 웃기거나 또 잘 웃으면 실없는 사람이라는 통념이 지금도 통하고 있는 한국이긴 하지만 옛날 우리 뛰어났던 정치가들은 유머감각이 풍부했으며 그 유머로 긴장과 갈등을 해소한 사례도 많았다.

 

조선 선조 때 정승 ‘백사 이항복’은 대표적인 정치가였다. 동서당쟁으로 왜란을 야기 시켜 놓고도 피난 가서까지 삿대질하며 언쟁이 격화돼 있는 조정에 이항복이 일어서서는 “우리가 참 큰 실수를 했습니다. 이렇게 싸움을 잘하는 동인들로 동해를 막게 하고 서인들로 서해를 막게 했으면 왜놈들이 어떻게 침략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야 깨닫게 되니 원통합니다.”

 

대북과 소북으로 갈라져서 공리공론으로 싸움만 일삼는 조정에 이항복이 늦게 나타났다.  “대감 웬일로 늦었소”하고 묻자 “오는 길에 싸움구경 좀 하느라 늦었습니다.” “무슨 싸움이길래?” 이항복이 대답한다. “삭발한 승려가 신낭이 없는 환관.(宦官)과 싸우는데 승려는 환관의 신낭을 잡고 환관은 승려의 머리를 잡고 싸우고 있습디다.” 소득 없는 당쟁을 이렇게 풍자하여 주위를 숙연케 했다.

전 미국 대통령(아버지 부시) 부인 로라 부시의 유머도 잘 알려져 있다.(물론, 몇 차례의 전략회의와 리허설 등 치밀한 사전 각본에 의해 준비된 유머였지만) “남편(부시)은 걸핏하면 크로퍼드로 달려가지만 사실 목장 일은 잘 모른다. 한번은 말 젖을 짜겠다며 수컷과 씨름했다.”...며 좌중을 뒤집어지게 한 농담도 농담까지 기획하는 ‘이미지 정치’의 실상을 보여주는 일화지만, 그만큼 유머의 정치적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1984년 미국 대선 때 레이건 후보는 경쟁자 먼데일이 “너무 늙지 않았느냐”며 나이를 문제 삼자 “나는 너무 젊다거나 경험이 없다는 것을 정치목적에 이용하지 않겠다.”고 되받았다. 재임 중 저격을 당하고 병원에 실려 가서는 급하게 달려온 부인 낸시에게 한 마디 한다. “여보 내가 고개를 숙인다는 것을 깜빡 잊었소”. 수술이 끝나자 레이건 대통령은 “할리우드에서 이렇게 저격을 당할 만큼 주목을 끌었으면 배우를 그만 두는 것이 아니었는데...”했다 한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1987년 대선 당시 ‘충청도 무대접’론 등 숱한 재담과 유머를 구사하며 유세를 벌였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특유의 저돌성과 말실수로 유머 이상의 웃음을 선사했다. 향토색 풍기는 유머의 대가였던 이철승 전 의원은 정적인 DJ·YS에 대해 “밤새 불 켜 들고 돌아다니다 새벽이면 싸리 문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라고 비유했다.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자신이 ‘서산에 지는 해’라는 반대세력의 주장에 “태양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잔잔한 일몰이다. 서산을 벌겋게 물들이겠다.”고 반박했다.

 

한국정치는 그동안 비약적인 변화와 개혁을 이뤘지만 유머 문화는 갈수록 척박해져가는 느낌이다. ‘상대를 망가뜨려야 내가 산다’는 네거티브 정치전략 때문에 경멸과 조소 일색의 ‘저질 유머’만 득세할 뿐, ‘유머의 정치’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듯하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은근한 익살과 해학을 즐겼다. 정치의 세계에서 그런 전통이 되살아날 수만 있다면 정치인과 국민들의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대체로 멋없는 우리 정치인들에게 성숙되길 기대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유머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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