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때 고구마순 김치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데 70대 중반의 어르신 한 분이 제 손을 꽉 잡고 눈물을 흘리셨어요. 서울로 시집살이 와서 평생 잊지 못했던 전라도 어렸을 적 그 젓갈 맛과 그 고구마순 김치 맛을 죽기 전에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다며 2만 원짜리 상품권을 쥐어 주시더라고요. 그 순간 온몸에 박힌 소금기와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면서 ‘내가 명인이 되기를 참 잘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6일 삼기농협에서 진행된 고구마순 축제장에서 만난 이후 익산 제1호 김치 명인 신승주(짓도가지 김치연구소 대표) 씨를 다시 만났다.
서울로 시집가 평생 그리워했던 고향의 맛인 고구마순 김치를 다시 맛보고 건넨 무심하지만 따뜻한 위로와 감사가 섞인 말에 ‘김치명인으로서 지나온 고생이 모든 순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말하는 신승주 명인.
익산시 제1호 식품(김치) 명인으로 선정된 신승주 ‘짓도가지 김치연구소’ 대표의 첫마디에는 지난 세월에 대한 자부심과 깊은 울림이 묻어난다.
원광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석사 학위를 거쳐 박사 과정까지 수료한 그녀는 학문적 깊이와 현장 실무를 모두 겸비한 드문 전문가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조리기능사 실기 시험 감독관으로 오랜 기간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 강의실에서는 예비 영양사들에게 “칼질과 웍을 다룰 줄 모르는 영양사는 안 된다”며 실무의 중요성을 매섭게 가르치는 열정적인 교육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의 연구실은 밤낮이 따로 없이 새벽 1시나 2시까지 가스 불 앞에서 새로운 발효 원리와 양념 배합을 실험하는 일은 다반사다.
본보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 늦은 나이임에도 영어 시험과 6개 과목의 관능 평가, 실험 논문 통과를 위해 눈물 흘리며 버텨낸 수많은 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지난 25년 간 그녀가 오롯이 걸어온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버려지던 고구마순의 변신, 20가지 레시피로 꽃피우다
신승주 명인은 지난 2025년 익산시 식품(김치) 명인 제1호로 선정되며 지역 김치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원광대학교에서 식품영양학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장 강의를 이어온 그는 학문적 지식과 손맛을 겸비한 베테랑이다.
특히 그녀가 지역 축제에서 선보인 ‘고구마순 3고(입·줄기·고구마) 요리 전시’는 시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신 명인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는 바로 ‘고구마순’의 재발견이다.
전국 고구마 생산의 메카 중 한 곳인 익산의 잠재력에 주목한 그는 버려지기 쉽상인 고구마의 잎, 줄기, 그리고 뿌리(고구마)를 아우르는 ‘3고(三高) 요리’를 작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파스텔톤 색감을 자랑하는 삼계탕 죽을 끓이고 줄기로는 전통 장을 활용한 짜글이와 감칠맛 넘치는 장아찌를 담갔으며 잎으로는 향긋한 고구마순 잎 김치를 개발했다.
해마다 20가지에 달하는 방대한 메뉴를 혼자의 힘으로 구상하고 개발하느라 머리가 쪼개질 고통을 겪었지만, 그가 그 모든 고생을 기꺼이 감내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타지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고구마순 김치는 단순한 반찬이 아닌 잃어버린 고향이자 위로였고 젊은층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식재료지만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로서 고구마순의 가치를 증명해낸 순간이었다.
그간 버려지기 일쑤였던 고구마순을 활용해 김치뿐만 아니라 장아찌, 짜글이, 삼계탕 죽, 꼬마김밥 등 무려 20여 가지에 달하는 메뉴를 직접 개발해 낸 것이다.
“솔직히 메뉴 20가지를 개발한다는 건 머리가 쪼개질 만큼 고된 과정이었지만 축제장에서 ‘이런 버려지는 재료로 요리를 할 수 있다니 충격적이다’라며 감탄하는 시민들을 볼 때 그리고 타지에 사는 향우가 옛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때 명인으로서 최고의 보람을 느낍니다”
▲ “시민이 쉽게 담그는 김치.. 그것이 내 꿈입니다”
신승주 명인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화려한 명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요즘 주부들이 김치 담그기를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현실에서 ‘누구나 쉽고 까다롭지 않게 담글 수 있는 건강한 김치’를 보급하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이를 위해 익산시가 마련한 ‘사계절 명인 김치 마스터클래스’는 오이소박이, 당근라페, 고구마순줄기, 생굴무채지 등 제철 재료를 활용해 풀 국 끓이는 법부터 젓갈 활용법까지 명인만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는 장이 되고 있다.
또한, 서동요 설화에 등장하는 ‘마’를 활용해 국내 최초로 '마 백김치'를 개발하고 전주발효엑스포 및 세계잼버리 대회 등 굵직한 무대에서 콩나물로 만든 오색김밥과 천연 물들인 픽클 등을 선보이며 대중의 감탄들을 자아내기도 했었다.
“제가 공부하고 연구한 모든 것을 무덤까지 가져갈 수는 없지요. 대학 강의실에서 혹은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나는 후학들과 우리 시민들에게 저의 모든걸 다 쏟아붓고 싶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행정, 그러나 시민의 건강을 위해 멈추지 않는다
신승주 명인은 진정한 미식 도시 익산의 미래에 대해 행정이 주도하는 일회성 행사나 성과 위주의 접근에 대해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식품 클러스터와 유네스코 김장 문화를 품은 익산시가 명인의 노하우를 지역의 대표 자산으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실제로 축제 기간 동안 고구마순 김치와 요리들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지원과 경직된 행정 시스템 속에서 현장 실무자들은 극심한 고생을 치러야 했다.
그녀는 진정한 미식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일회성 전시를 넘어 전국 규모의 ‘고구마순 김치 경연대회’ 등을 개최해 전국의 요리사들과 대중이 참여하는 판을 깔아주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아울러, 그녀는 행정이 주도하는 일회성 성과 위주의 행사보다 지역의 우수한 식재료와 레시피가 지속 가능한 특산 미식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과 과감한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향후 고구마순 축제가 전국적인 경연대회로 확대되어 익산의 대표 미식 자산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그 연장선에 있길 바라는 그녀의 짧은 속내다.
“장사는 안 해도 제 연구실에서 엄마들이 쉽게 따라 담글 수 있는 김치를 가르치는 일은 제 평생의 꿈입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은 빼고 누구나 집에서 맛있고 건강한 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도록 제 모든 노하우를 다 쏟아붓고 싶어요. 무대만 깔아주신다면 저는 언제든 펄펄 날아다니며 다 해낼 수 있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외롭게 지켜온 전통 발효의 불꽃이 이제 시민들의 식탁 위로 그리고 익산의 미래 미식 정체성으로 어떻게 확산해 나갈지 신승주 명인의 손끝에서 피어날 내일이 더욱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신승주 명인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익산의 흙과 농산물 그리고 명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소울푸드가 시민들의 식탁을 넘어 익산시를 대표하는 미식 정체성으로 어떻게 꽃피울지 앞으로 기자는 그녀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이증효기자 event00@naver.com <저작권자 ⓒ 전북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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