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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시인
물음표(?)는 의문문이나 의문을 나타내는 어구의 끝에 쓰는 것으로 “아침은 먹었어?”,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면 얼마나 좋을까?” 등으로 표현한다.
느낌표(!)는 기쁨·슬픔·놀람 등을 나타내는 문장의 끝에 온점 대신 놓인다.
큰 강조를 하고 싶을 때 ‘!!’, ‘!!!’와 같이 연속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일상적 대화에서도 물음표(?)와 느낌표(!)는 필요 불가결이다.
대화 중 부정이나 비난은 쉽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대화는 권장할 만한 것이 못된다.
원만한 대화는 감정 통제도 잘 될 뿐만 아니라 좋은 언어를 선택해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모 신부님에 의하면 말에는 세 부류가 있다고 한다. 말씨와 말씀과 말투다.
말씨는 ‘씨를 뿌리는 사람’이고, 말씀은 ‘기분 좋게 전하는 사람’, 말투는 ‘말을 던지는 사람’이라며 말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난겨울에 하와이로 여행을 갔다 왔어요. 정말 멋진 곳이었어요”라고 했을 때 “그럼요. 나도 서너 번 가 봤어요” 이런 대답을 했다면 몇 등급이겠는가? “정말요? 좋았겠습니다!” 추임새 얼쑤같은 물음표(?)나 느낌표(!)는 상대를 신나게 해주기 때문에 말씨를 잘 뿌리는 것이다.
뻔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말꼬리에 물음표(?)나 느낌표(!)를 달아줌으로서 당신의 말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 줄 때 상대에게 감동과 격려를 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물음과 감탄에 감동을 받고 기분이 좋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말은 닦을수록 빛이 나고 향기가 난다. 말할 때도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이는 말을 할 때 상대의 입장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내가 객관적으로 생각한 말인데…”,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봐”, “너에게 하는 말은 아니고…”와 같은 면피적인 허언이나 실언 등 말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입이 하나인 것은 수없이 내뱉는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말도 있지만 죽이는 말이 있음을 알고 조심하라는 것이다.
같은 말도 누구에게는 복이 되고 누구에게는 독이 된다.
기왕이면 “이제 오면 어떻게 해?” 보다 “오느라고 힘들었겠다!”, “너는 실수를 그렇게 자주해?”보다 “그럴 수도 있지!”하고 물음표(?) 보다 느낌표(!)를 사용하면 세상은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다.
어떤 노(老) 학자는 물음표(?)가 있어야 무릎을 ‘탁’ 치는 느낌표(!)가 생긴다고 했다.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라는 말이다. 물음표(?)의 다른 말은 “왜?”라고 할 수 있다.
느낌표(!)의 다른 말은 “아!”라고 할 수 있다. “왜?”라는 물음이 있었기에 “아!”라는 공감과 감동이 있기 때문에 물음표(?)와 느낌표(!)는 남남이 아니다.
“왜?”라는 물음을 던진 선각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인류 문명은 발전할 수 있었다.
“왜?”라는 물음표(?)가 없는 삶은 생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만나는 것들에 대해서 언제나 “왜?”라는 물음을 던지고 “아!”라는 긍정의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갖고 살아가는 존재다.
마치 양팔저울이 수평을 이루듯이 물음표(?)와 느낌표(!)의 무게는 같다.
물음표(?)는 느낌표(!)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느낌표(!)는 물음표(?)가 없으면 무의미하다.
“어쩌면 그렇게 말을 예쁘게 하세요?” “복 받을 말만 하시네요!” 물음표와 느낌표 사용에 인색하지 않아야겠다. /정성수 시인 <저작권자 ⓒ 전북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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