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사가 백성을 만나던 자리, 국민이 다시 모이는 마당

전북금강일보 | 기사입력 2026/11/05 [16:54]
덕유산 50년 상생의 기록과 재생

[기고] 어사가 백성을 만나던 자리, 국민이 다시 모이는 마당

덕유산 50년 상생의 기록과 재생

전북금강일보 | 입력 : 2026/11/05 [16:54]

조선시대 어사는 지팡이에 마패를 달고 산간 마을을 찾아 백성의 억울함을 들었다. 무주 구천동의 '어사길'은 어사가 사람을 만나러 다녔던 길이다. 그 계곡이 다시 국민을 맞이하는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이번에는 관아의 명이 아니라 지역과 국민의 필요가 그 길을 연다.

 

몇 해 전만 해도 구천동의 이야기는 밝지 않았다. 2010년 연간 61만 명이 찾던 '구천동 33경'은 지난해 16만 명 수준으로 줄었고, 그 침묵은 관광특구 상권과 주민의 삶에 그대로 반영됐다. 젊은 세대가 떠나는 지방소멸의 시대, 국립공원은 규제의 경계선이 아니라 지역 경제의 거점으로 새로 읽혀야 한다. 구천동의 재생은 덕유산만의 실험이 아니라 쇠퇴한 지역사회의 공통 과제다. 그 답의 첫 페이지는 작은 민원에서 피어났다.

 

민원에서 피어난 상생

 

지난해 가을, 국립공원 입구의 노후·무허가 가압정수장에 대한 주민 민원이 접수됐다. 사무소는 시설을 철거하고 그 자리를 탐방객이 쉬고 사진을 남기는 광장으로 되돌렸다. 경관을 갉아먹던 시설이 사라진 그 자리에, 어사길의 상징인 마패를 국립공원 캐릭터 '반달이와 꼬미'와 결합한 포토존을 갖춰 올가을 '어사마당'으로 개방했다. 사업비 2억 4천만 원의 작은 재생이지만, 민원이 새 사업이 되고 그 사업이 지역의 자존심이 되는 문법을 보여줬다.

 

주민이 저자가 된 50년의 기록

 

올해 덕유산은 지정 50년을 맞아 지역상생 역사서 『시간의 두 얼굴』을 발간했다. 규제와 단속에서 과학적 보전과 상생으로 변해간 반세기를 처음으로 기록으로 남긴 책이다. 주민 장롱 속 옛 사진과 어르신들의 구술이 곧 원고였다. 유실 위기의 사료 약 200건은 디지털 아카이브로 옮기고, 흑백 사진에는 인공지능 복원 기술로 다시 색을 입혔다. 규제 대신 데이터로, 장롱 속 사료 대신 클라우드로 지키는 '기술을 입은 보전'이다. 재생종이와 콩기름 인쇄로 탄소중립까지 실천한 이 기록은, 이제 상설전시와 전자책으로 국민과 만난다.

 

걷고 머무는 상생

 

대량 탐방의 시대가 저물고, 소규모로 오래 머물며 치유받는 체류형 탐방이 새 기본값이 됐다. 어사마당은 그 전환의 시작점이다. 국가생태탐방로로 선정된 구천동생태탐방로(약 100억 원), 덕유대야영장 개선(45억 원), 생태탐방원(약 187억 원)이 탐방의 축을 낮은 숲으로 옮긴다. 이 모든 설계에는 무주군과 맺은 지역 관광 활성화 협약이 배경으로 있다. 공원 진입로 정비와 생태 보전 활동을 지역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미 전기 셔틀버스가 올해만 1만여 명을 나르고, '컬러헌팅' 정서회복 체험이 젊은 발길을 되돌리며, 심폐소생술 학습 공간에서는 1,230여 명이 이용 기록을 클라우드로 쌓으며 골든타임을 연습하고 있다.  안전까지 국민과 함께하는 것이 상생의 완성이다.

 

어사가 마패를 달고 다녔던 이유는 단순했다. 발로 뛰며 귀로 듣겠다는 것. 마을이 국립공원을 기록하고 국립공원이 마을의 목소리를 담았기에, 덕유산의 50년 상생은 약속이 아니라 이미 증명된 역사다. 1975년 국민의 지지로 태어난 이 산의 다음 100년은 그 기록 위에 쓰인다. 올해 어사마당에서 과거와 현재의 사진이 만나는 것을 직접 보시길 권한다. 어사가 백성을 만났던 이 계곡에서 국민 모두가 상생의 주인공이 되는 일, 그 동행에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국립공원공단 덕유산국립공원사무소장 안길선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